글 수 18
신앙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경험했던 선택의 순간은 대체로 환경과 하나님의 뜻이 서로 대치되는 상황에서 연출되곤 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상황은 바울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되는 계기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나니아 개인에게 있어서는 또하나의 선택의 상황이 펼쳐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도행전 9:11~15)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어 사울은 '냉혈한을 가지고 있는 살인자' 처럼 여겨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단순히 힘만 세고 열정만 있는 거친 살해범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엘리트로서 조직적으로, 그리고 치밀하게 로마정부에 반하는 초대교회 세력들을 잡아들여 처단하는 역할들을 감당한 것입니다. 예측컨데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어 '꿈에라도 맞닥트리고 싶지 않은 사람 한명'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사울을 꼽으라고 할 정도로 사울에 대한 공포는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만나러 가라라고 하는 명령은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음에 분명했습니다.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3절)
아나니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보인 반응은 그러하기에 우린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린 이러한 선택의 상황이란 것을 구조적으로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나니아는 신실한 믿음의 일꾼으로 분명 예수님의 가르침을 신뢰하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목숨을 걸고 그분을 따르기로 결심한 청년이었을 것입니다. 아나니아 뿐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라면 누구나 목숨을 건 용감함이 담보되지 않고서는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러한 아나니아에게 사울에게 가라는 명령만큼 위험한 명령도 없지만, 그 말씀이 완전히 '신뢰할만한' 하나님의 명령이란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입니다(시 107:1). 그리고 그 하나님의 명령은 언제나 공동체와 개인에게 선한 일들을 만드시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롬 8:28). 그렇다면, 우리는 '극단적인 환경'과 '완벽히 신뢰할만한' 하나님의 명령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현명한 일일까요?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없이는 이 세상에서 아무 일도 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지만, 한편으로는 '무기력한 분'이십니다. 제가 작년 이맘때즘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년엔 나도 월드미션 일본팀 같은 곳에 팀장으로 한번 섬겨보고 싶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금방 잊혀지고 한해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민팀장님이 몇주전 제게 와서 "올해 월드미션 팀장으로 섬겨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때 우리는 일본으로 단기선교 장소가 정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저는 작년 내가 문득 들었던 그 생각이 하나님이 내게 먼저 소원을 주시고 말씀해주신 것이란 믿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환경들이 열리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 제안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전 2001년도에 단기선교를 갔다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5개월동안 단기선교를 준비했던 이 십여명의 젊은이를 통해 만일 이곳의 한영혼이 구원으로 인도된다면 우리 단기 선교는 어떠한 의미일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물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릴 통해 일하시는 과정을 아주 극적으로 설명해 주는 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일본에서의 이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을 품으신 하나님은 먼저 일년전쯤 팀장 한사람에게 '올해 일본으로 사역을 나갈 준비를 하고 팀원들을 모으라'는 마음의 소원을 불어넣으십니다. 저한테 하셨던 것처럼요. 그리고 우리 팀의 30여명의 젊은이들 각자의 마음속에서 또 하나님은 찾아가셔서 그들이 일본으로 단기선교를 가도록 권유하십니다. 그 삼십명들은 100만원정도의 선교비를 위해 3~4개월동안 각자의 삶이 매우 분주해질 것입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선교를 가기 위해 훈련받는동안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게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옇든 하나님은 한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돈으로는 3천만원정도를, 그리고 30여명의 한해 여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면서 그들을 일본으로 보내시고, 비로소 한사람이 예정대로 그 선교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비용으로 따지자면, 한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대략 6천만원정도가 드는 셈입니다.
그런데, 올해 그 사람이 구원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럼 한해 뒤로 넘어가게 되겠죠. 그렇다면, 두배의 사람, 두배의 돈이 더 필요하게 된겁니다. 한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1억 2천만원의 돈이, 60여명의 젊은이들이 6개월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이 '한 영혼'이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는 것입니다.
태초, 한 사람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지렁이보다 못한 인간이 되시고, 하나님이 하늘보좌가 아닌, 모래바람 날리는 허름한 지구로 성육힌 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온 우주의 질서가 무너져 버리고 뒤죽박죽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온 우주를 내팽개치신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마찬가지 방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렇게 엄청난 '비효율'로 얻으셨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토록 엄청난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계획하시는데 이렇게 톱니바퀴 같은 구원의 계획 속에 뛰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이 있을 때,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 애타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지체되기 때문입니다. 팀장으로 부르심 받은 이가 부르심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은 또다른 팀장이 될만한 이들을 찾으러 동분서주 하셔야 합니다. 그 역할을 맡을 사람이 나 밖에 없다면, 하나님은 계속 내 마음이 열릴때까지 노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떄부터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계속 미뤄지고 말 것입니다. 팀원으로 모인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느 한사람도 하나님의 이 계획속에서 불필요한 사람이 없습니다(고전 12:12). 여러분이 부르심을 거부한다면, 적합한 이들을 찾아 하나님은 또 사람들을 찾으러 나서게 될 것입니다. 시간은 없는데, 하나님은 한시라도 빨리 그 영혼을 얻으셔야 하는데, 그 하나님의 일꾼들로 인해 계획들은 계혹 미뤄지고 마는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갈 것인가. 아니면 잠적하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요새로 숨을 것인가... 이 숨막히는 선택의 상황에서 하늘의 천사와 하나님은 마치 승부차기 직전 골을 넣을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를 숨죽이며 지켜보는 관객들의 심정과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가기로 결정한 순간, 하늘나라는 마치 결승골을 작렬시킨 홍명보에게 보내는 환호성보다 더 큰 함성이 울려 펴졌을 것입니다.
"이제 사울은 문제 없군! 아나니아를 통해서 바울이 구원으로 인도됐어! 바울을 통한 이후 30년의 계획은 이제 이루어진 셈이야! 아나니아 훌륭해!"
아나니아를 극단적인 환경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함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신학자인 바울을 구원으로 인도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아나니아의 이러한 선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이러한 믿음을 하나님께 보였고, 하나님은 바울의 구원을 이야기 할때 아나니아의 이름이 빠지지 않도록 놀랍도록 상을 베푸셨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월드미션을 가기 위해 원서를 쓰는 마지막 날입니다. 전 여러분께 도전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월드미션으로 부르셨습니다. 상황은 모두에게 다릅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모두 여러분에게 피하고 싶은 극단의 환경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어느때보다도 확실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올 여름 우리 모두의 몸을 맡겨봅시다.
"그래! 네가 순종하면 올 여름 너희팀이 일본의 그 한사람을 만나기 위한 계획이 완성되는거야! 어서! 이 계획을 완성시켜줘!"
그래서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한 영혼,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를 통해 만나기 원하시는 일본의 그 한영혼을 위해 달려갑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상급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어떤 선택의 상황에서도 확실하고 확고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우리 결정합시다. 하나님의 이 애타는 구원의 계획 속에서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렸던 아나니아처럼 우리 하나님의 든든한 일꾼으로서 그 분을 안심시켜 드립시다!
- 미디어파트장, 2008년 4월 여호수아찬양팀 기도모임 메시지 中 -
PS. 30여명의 지체들이 월드미션 원서를 단기간에(?) 접수했습니다. 참가 숫자와 원서접수의 민첩함 등은 여호수아찬양팀의 5년 선교 사상 처음 이루어진 쾌거(?)입니다. 순종의 일꾼인 여호수아팀을 하나님께 자랑하고 싶습니다. 우리팀을 도구로 쓰실 하나님이 여름 단기선교를 통해 일하실 것들을 기대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도행전 9:11~15)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어 사울은 '냉혈한을 가지고 있는 살인자' 처럼 여겨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단순히 힘만 세고 열정만 있는 거친 살해범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엘리트로서 조직적으로, 그리고 치밀하게 로마정부에 반하는 초대교회 세력들을 잡아들여 처단하는 역할들을 감당한 것입니다. 예측컨데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어 '꿈에라도 맞닥트리고 싶지 않은 사람 한명'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사울을 꼽으라고 할 정도로 사울에 대한 공포는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만나러 가라라고 하는 명령은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음에 분명했습니다.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3절)
아나니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보인 반응은 그러하기에 우린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린 이러한 선택의 상황이란 것을 구조적으로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나니아는 신실한 믿음의 일꾼으로 분명 예수님의 가르침을 신뢰하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목숨을 걸고 그분을 따르기로 결심한 청년이었을 것입니다. 아나니아 뿐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라면 누구나 목숨을 건 용감함이 담보되지 않고서는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러한 아나니아에게 사울에게 가라는 명령만큼 위험한 명령도 없지만, 그 말씀이 완전히 '신뢰할만한' 하나님의 명령이란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입니다(시 107:1). 그리고 그 하나님의 명령은 언제나 공동체와 개인에게 선한 일들을 만드시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롬 8:28). 그렇다면, 우리는 '극단적인 환경'과 '완벽히 신뢰할만한' 하나님의 명령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현명한 일일까요?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없이는 이 세상에서 아무 일도 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지만, 한편으로는 '무기력한 분'이십니다. 제가 작년 이맘때즘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년엔 나도 월드미션 일본팀 같은 곳에 팀장으로 한번 섬겨보고 싶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금방 잊혀지고 한해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민팀장님이 몇주전 제게 와서 "올해 월드미션 팀장으로 섬겨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때 우리는 일본으로 단기선교 장소가 정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저는 작년 내가 문득 들었던 그 생각이 하나님이 내게 먼저 소원을 주시고 말씀해주신 것이란 믿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환경들이 열리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 제안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전 2001년도에 단기선교를 갔다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5개월동안 단기선교를 준비했던 이 십여명의 젊은이를 통해 만일 이곳의 한영혼이 구원으로 인도된다면 우리 단기 선교는 어떠한 의미일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물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릴 통해 일하시는 과정을 아주 극적으로 설명해 주는 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일본에서의 이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을 품으신 하나님은 먼저 일년전쯤 팀장 한사람에게 '올해 일본으로 사역을 나갈 준비를 하고 팀원들을 모으라'는 마음의 소원을 불어넣으십니다. 저한테 하셨던 것처럼요. 그리고 우리 팀의 30여명의 젊은이들 각자의 마음속에서 또 하나님은 찾아가셔서 그들이 일본으로 단기선교를 가도록 권유하십니다. 그 삼십명들은 100만원정도의 선교비를 위해 3~4개월동안 각자의 삶이 매우 분주해질 것입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선교를 가기 위해 훈련받는동안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게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옇든 하나님은 한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돈으로는 3천만원정도를, 그리고 30여명의 한해 여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면서 그들을 일본으로 보내시고, 비로소 한사람이 예정대로 그 선교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비용으로 따지자면, 한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대략 6천만원정도가 드는 셈입니다.
그런데, 올해 그 사람이 구원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럼 한해 뒤로 넘어가게 되겠죠. 그렇다면, 두배의 사람, 두배의 돈이 더 필요하게 된겁니다. 한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1억 2천만원의 돈이, 60여명의 젊은이들이 6개월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이 '한 영혼'이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는 것입니다.
태초, 한 사람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지렁이보다 못한 인간이 되시고, 하나님이 하늘보좌가 아닌, 모래바람 날리는 허름한 지구로 성육힌 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온 우주의 질서가 무너져 버리고 뒤죽박죽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온 우주를 내팽개치신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마찬가지 방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렇게 엄청난 '비효율'로 얻으셨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토록 엄청난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계획하시는데 이렇게 톱니바퀴 같은 구원의 계획 속에 뛰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이 있을 때,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 애타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지체되기 때문입니다. 팀장으로 부르심 받은 이가 부르심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은 또다른 팀장이 될만한 이들을 찾으러 동분서주 하셔야 합니다. 그 역할을 맡을 사람이 나 밖에 없다면, 하나님은 계속 내 마음이 열릴때까지 노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떄부터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계속 미뤄지고 말 것입니다. 팀원으로 모인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느 한사람도 하나님의 이 계획속에서 불필요한 사람이 없습니다(고전 12:12). 여러분이 부르심을 거부한다면, 적합한 이들을 찾아 하나님은 또 사람들을 찾으러 나서게 될 것입니다. 시간은 없는데, 하나님은 한시라도 빨리 그 영혼을 얻으셔야 하는데, 그 하나님의 일꾼들로 인해 계획들은 계혹 미뤄지고 마는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갈 것인가. 아니면 잠적하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요새로 숨을 것인가... 이 숨막히는 선택의 상황에서 하늘의 천사와 하나님은 마치 승부차기 직전 골을 넣을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를 숨죽이며 지켜보는 관객들의 심정과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가기로 결정한 순간, 하늘나라는 마치 결승골을 작렬시킨 홍명보에게 보내는 환호성보다 더 큰 함성이 울려 펴졌을 것입니다.
"이제 사울은 문제 없군! 아나니아를 통해서 바울이 구원으로 인도됐어! 바울을 통한 이후 30년의 계획은 이제 이루어진 셈이야! 아나니아 훌륭해!"
아나니아를 극단적인 환경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함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신학자인 바울을 구원으로 인도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아나니아의 이러한 선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이러한 믿음을 하나님께 보였고, 하나님은 바울의 구원을 이야기 할때 아나니아의 이름이 빠지지 않도록 놀랍도록 상을 베푸셨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월드미션을 가기 위해 원서를 쓰는 마지막 날입니다. 전 여러분께 도전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월드미션으로 부르셨습니다. 상황은 모두에게 다릅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모두 여러분에게 피하고 싶은 극단의 환경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어느때보다도 확실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올 여름 우리 모두의 몸을 맡겨봅시다.
"그래! 네가 순종하면 올 여름 너희팀이 일본의 그 한사람을 만나기 위한 계획이 완성되는거야! 어서! 이 계획을 완성시켜줘!"
그래서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한 영혼,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를 통해 만나기 원하시는 일본의 그 한영혼을 위해 달려갑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상급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어떤 선택의 상황에서도 확실하고 확고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우리 결정합시다. 하나님의 이 애타는 구원의 계획 속에서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렸던 아나니아처럼 우리 하나님의 든든한 일꾼으로서 그 분을 안심시켜 드립시다!
- 미디어파트장, 2008년 4월 여호수아찬양팀 기도모임 메시지 中 -
PS. 30여명의 지체들이 월드미션 원서를 단기간에(?) 접수했습니다. 참가 숫자와 원서접수의 민첩함 등은 여호수아찬양팀의 5년 선교 사상 처음 이루어진 쾌거(?)입니다. 순종의 일꾼인 여호수아팀을 하나님께 자랑하고 싶습니다. 우리팀을 도구로 쓰실 하나님이 여름 단기선교를 통해 일하실 것들을 기대합니다.




